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후의 심판 (문단 편집) == 1에 관해 묘사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성화 ==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canvasreplicas.com/Last%20Judgment.jpg|width=100%]]}}} || ||<-2> {{{+1 '''최후의 심판'''}}}[br]{{{#!wiki style="font-family: Times, serif" ''' ''Il Giudizio Universale'' '''}}} || || '''화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 '''국가''' ||[include(틀:국기, 국명=이탈리아)]|| || '''제작''' ||[[1536년]]-[[1541년]]|| || '''사조''' ||[[르네상스]]|| || '''종류''' ||[[벽화]]|| || '''기법''' ||[[프레스코]]|| || '''크기''' ||13.7m × 12m|| || '''소장''' ||[include(틀:국기, 국명=바티칸)][br][[시스티나 경당]]|| ||<-2>|| 1533년에 [[교황]] [[클레멘스 7세]]의 명으로 [[시스티나 경당]]에 그려진 벽화로, [[사코 디 로마]]를 비롯한 재난의 연속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 1534년 교황의 사망으로 이 작업은 일단 중지되었으나 클레멘스 7세의 뒤를 이어 교황이 된 [[바오로 3세]]가 다시 이 작업을 의뢰함으로써 결국 1541년에 면적 완성되었다. 바티칸에서 제공하는 [[https://www.vatican.va/various/cappelle/sistina_vr/index.html|전체 그림을 볼 수 있는 사이트]]. 시스티나 경당을 파노라마 촬영한 것이나 구석구석까지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림을 보고 [[추기경]]을 비롯한 성직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그림에서 보았듯이 대부분의 인물이 나체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수]]의 모습이 기존의 성화와는 전혀 다르고, 사람의 가죽을 벗기는 등 과격한 묘사들로 가득 차 있다. 당연히 수많은 성직자들과 추기경들은 "이런 나체화는 성당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탄원했다. 그나마 이 그림을 인정한 [[바오로 3세]] 생전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지만, 바오로 3세가 사망한 이후 소집된 1564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비속한 부분은 모두 가려져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져 결국 미켈란젤로의 제자인 다니엘레 다 볼테라가 그림의 인물에 옷을 그려 가리는 것으로 일단락이 된다. 하지만 이 때문에 볼테라에게는 현대까지도 '[[기저귀]] 그리는 화가'라는 명예롭지 못한 별명이 따라다닌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성화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나체화로 그려졌지만 그림 실력에는 타고나서, 더 이상 태클 거는 성직자들은 없었다. 그런데 당시 [[교황]]의 의전담당관 '비아지오 다 체세나' [[추기경]]은 누드화로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보고 '나체들은 거룩한 장소에 적절하지 못하며 홍등가에나 어울리는 것'이라고 혹평을 한다. 하지만 [[교황청]]이 자신을 후원해주고 있기에 이러한 혹평을 대놓고 표현하지 못했던 미켈란젤로는 6년 반에 걸친 이 그림 제작 과정에서 복수한다. 4구역의 오른쪽 하단에 있는 카논의 배 부분[* 위 그림에서는 오른쪽 맨 아래 구석, 바티칸 사이트에서는 오른쪽 문 바로 위에 있다.]에 체세나 추기경을 '지옥의 수문장 미노스'로 그려넣은 것이다. 미노스의 귀는 당나귀 귀로 표현되었는데 [[당나귀]]의 귀는 보통 무지하다는 상징이고 성기마저 [[뱀]]이 물고 있게 그려 인간의 성적 방종에 대한 하느님의 가혹한 심판을 보여준다. 일설에 의하면 체세나 추기경도 성직자임에도 불구하고 문란한 사생활을 보냈기에 이렇게 비꼬았다고 한다. 이런 미켈란젤로의 장난질에 체세나 추기경은 화가 나서, 당시 교황인 [[바오로 3세]]에게 자신의 얼굴을 빼줄 것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미켈란젤로가 그나마 [[수도복]]을 입고 무덤에서 나오는 영혼을 돌보는 천사로 교황 자신을 표현했는데, [[바오로 3세]]는 괜히 그림에 이래라 저래라 했다가 자기도 미켈란젤로의 심기를 건드려 작품에 망측한 꼴로 그려질까봐, '''"체세나 추기경님이 연옥에만 계셨어도 제가 어떻게 해보겠는데, 사람인 제가 지옥에서 추기경님을 구원하기란 불가능합니다."'''라며 슬그머니 발을 빼버린다. 축성식은 1541년 10월 31일. 일설에는 축성식 당일 성화를 본 [[바오로 3세]]가 무릎을 꿇고 '''"[[야훼|하느님]], [[심판의 날]]에 저의 죄를 묻지 말아주소서."'''라고 청했다고 한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본인의 얼굴도 있다. [[사도 바르톨로메오]]가 들고 있는 살가죽의 얼굴이 미켈란젤로의 얼굴이다. 이는 미켈란젤로를 표시하는 장화 (그가 작업할 때마다 신던)를 살가죽이 신고 있어서 알 수 있다. 그 외의 다른 인물들과 그 위치는 [[https://100swallows.com/2009/02/12/whos-who-in-the-last-judgment/|여기]]를 참고하면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